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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WEEN TECH & RULES

당신의 아기를 고르세요 - 영화 <가타카>가 현실로

당신의 아기를 고르세요 - 영화 <가타카>가 현실로

지난 네 편은 모두 인공지능에 관하여 이야기했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주제로 시선을 옮겨보겠습니다.

2025년 11월, 뉴욕 지하철에 도발적인 광고가 걸렸습니다. "Have Your Best Baby(최고의 아기를 가지세요)"라는 문구와 함께"키는 80% 유전, IQ는 50% 유전"이라는 문구와 함께 웃는 아기들이 도배됐습니다. 연결되는 주소는 pickyourbaby.com. 너무나 도발적인 이 광고의 주인공은 미국 유전학 스타트업 뉴클리어스 제노믹스(Nucleus Genomics)입니다.

흥미로우면서도 당황스러웠습니다. 아무리 자본주의로 돌아가는 미국이라 해도, 이게 진정 가능한 일인가? 윤리적으로도, 법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떠오르는 질문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 들여다봤습니다.




🧬 서비스의 정체

뉴클리어스 제노믹스가 2025년 6월 선보인 '뉴클리어스 엠브리오(Nucleus Embryo)'는 시험관 시술(IVF)로 만든 배아의 DNA를 분석해 약 2,000가지 항목의 점수를 매긴다고 말합니다. 암·심장병·알츠하이머 같은 질병 위험은 물론, 키와 IQ, 예상 수명, 체질량, 탈모, 눈·머리 색까지 포함됩니다.

글 내용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배아 형질 예측 표 예시

부모는 여러 배아를 이 점수표로 나란히 비교해 '가장 좋은' 배아를 골라 임신을 진행합니다. 가격은 약 5,999달러. 부부의 DNA만으로 미래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수백 가지 형질을 미리 그려보는 '프리뷰' 기능도 있습니다.

핵심 기술은 '다유전자 점수(PRS)'입니다. 하나의 유전자가 아니라 수만 개의 미세한 유전 변이를 종합해 형질을 확률로 예측하는 방식입니다. 회사는 이를 '유전적 최적화(genetic optimization)'라 부르며, 창업자 키안 사데기는 "역사상 처음으로 지능을 기준으로 배아를 최적화하게 해준다"고 홍보합니다. 이미 미국을 넘어 멕시코, 그리고 2026년 들어 인도와 중동의 여러 클리닉으로 발을 넓히고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가능한가?

일단 드는 의문은, '형질 예측이 현재 과학 기술로 (얼마나) 가능한 것인지'입니다.

광고는 확신에 차 있지만, 정작 과학계의 평가는 부정적입니다. 미국의학유전학회를 비롯한 전문가 단체들은 배아 다유전자 점수가 '근거가 너무 부족한데 너무 빨리 나아갔다'고 경고해 왔고, 이 기술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표준 진료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실제로 주요 IVF 클리닉들은 아직 이런 검사의 제공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다유전자 점수는 넓은 인구 집단에서는 어느 정도 통해도, 같은 부모에게서 나온 형제 배아들 사이에서는 예측력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게다가 키 하나를 고르려다 미처 알지 못한 다른 위험을 함께 고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유전학자들사이에서 '신(新)우생학', 영화 가타카, 심지어 테라노스[1]라는 말까지 나오는 이유입니다.

[1] 엘리자베스 홈즈가 세운 기업 테라노스(Theranos Inc.)는 소량의 혈액 몇 방울만으로 수백 가지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고 선전하여 투자자들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유치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고, 2015년 월스트리트 저널의 탐사 보도로 실체가 폭로되어 기업은 청산되었으며, 희대의 바이오 기술 투자 사기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물론 회사는 "정보를 주어 아이에게 최선의 출발점을 선물하는 것일 뿐 우생학이 아니다"라고 반박합니다.

이에 대한 판단은 아직 열려 있지만, 적어도 과학기술 측면에서 뉴클리어스 제노믹스는 광고가 약속하는 수준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 법적으로 가능한가?

'우생학'까지 갈 필요도 없이, 이렇게 배아를 대상으로 하는 기술은 일종의 원초적인 거부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각종 디스토피아적 SF물들도 이러한 거부감을 한몫 거들죠.

수준이 다르긴 하지만, 일전에 배아의 유전자에 관한 실험이 과학계를 넘어 전 세계에 충격을 준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2018년, 중국 남방과학기술대 허젠쿠이 박사가 세계 최초로 유전자 가위(CRISPR) 기술을 이용해 인간 배아의 유전자를 편집, 에이즈(HIV) 면역력을 가진 쌍둥이 아기를 출산(!)시켰다고 주장한 사건입니다. 이는 후손에게 유전될 수 있는 생식세포 유전자 편집이라는 점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허젠쿠이 박사는 불법 의료 행위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글 내용

유전자를 토대로 한 형질 예측이 가능하다고 칩시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러한 서비스에 대한 아무런 규제가 없을까요?

미국에서 배아에 대한규제는 '의료행위인가' - 의사가 치료 결정을 내리는지, 의료행위로서 환자의 건강에 직접 개입하는지 - 를 중심으로 판단합니다. 뉴클리어스 제노믹스는 스스로를 의료가 아니라 데이터·정보 서비스로 규정합니다. 자신들은 의료기관도 아니고, 의료진이 개입하지도 않으며, 결과 역시 확정적인 진단이 아닌 확률적·통계적 정보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죠. 실제 배아 검사도 다른 검사기관에 맡깁니다. 그 덕에 현재로선 FDA나 의료법의 규제에서 벗어나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애초에 미국에는 이런 배아 다유전자 선별을 직접 겨냥한 연방 규정 자체가 없어, 무엇을 측정하고 점수화하여 제공하든 별다른 제한이 없는 사실상 '자유방임' 상태입니다.

구조를 뜯어보면 이렇습니다. PickYourBaby와 같은 방식의 배아 검사는 '실험실 자체 개발 검사(LDT)'로 분류되는데, FDA는 전통적으로 LDT를 단속하지 않고 규제재량으로 남겨 왔고, 검사실 자체는 CMS가 임상검사실 개선법(CLIA)에 따라 관리합니다. 그런데 CLIA는 '표시한 것을 제대로 측정하는가'(분석적 타당성)만 볼 뿐, '그 예측이 의학적으로 의미가 있는가'(임상적 타당성)는 심사하지 않습니다. FDA가 2024년 LDT를의료기기로 규제하려는 규칙을 냈지만 업계 반발과 소송에 부딪혔고, 이런 검사에 대한 연방 차원의 사전 심사는 지금도 이뤄지지 않고있습니다.

그러니 뉴클리어스는 법을 교묘히 피한 게 아니라, 아직 아무 규제가 없는 자리에 먼저 들어선 셈입니다.

여기서 나아가 한 가지를 더 찾아봤습니다. 미국은 정자은행이 활성화된 것으로 아는데, PickYourBaby 서비스는 정자은행에서 원하는 정자를 고르는 것에 비해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글 내용

PickYourBaby 서비스와 정자 기증자 선택과의 결정적인 차이는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우선, 정자은행이 주는 것은 기증자의 키·학력·가족력처럼 이미 존재하는 '사실'인 반면, PickYourBaby가 파는 것은 아직 오지않은 미래를 점수로 매긴 '예측'입니다. 법은 사실 정보에는 관대해도, 인간의 미래를 등수로 매기는 순간 훨씬 예민해집니다.

다음으로는 시점입니다. 정자 선택은 수정 이전, 아직 어떤 생명도 형성되기 전에 재료를 고르는 일이지만, PickYourBaby는 이미 만들어진 배아들을 비교합니다. '선택'과 '선별'을 가르는 보이지 않는 선은 이때 넘어간다고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존재를 대신해 그의 조건을 고르고 있다는 사실은 동일하다고 하겠습니다.




🇰🇷한국에 출시한다면?

PickYourBaby 서비스는 한국에도 들어올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불가능합니다.

생명윤리법 제50조는 배아를 대상으로 한 유전자검사를 특정 유전질환을 진단하는 목적으로만 허용하고, 과학적으로 불확실해사람을 오도할 수 있는 외모·성격에 관한 유전자검사를 명확히 금지합니다[2]. 키·지능·외모를 점수로 매겨 광고하는 미국식 모델은 우리 법의 문턱을 넘지 못합니다.

[2]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제50조(유전자검사의 제한 등)

① 유전자검사기관은 과학적 증명이 불확실하여 검사대상자를 오도(誤導)할 우려가 있는 신체 외관이나 성격에 관한 유전자검사또는 그 밖에 국가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유전자검사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 유전자검사기관은 근이영양증이나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유전질환을 진단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배아 또는 태아를 대상으로 유전자검사를 할 수 있다.        




🧭 마무리

PickYourBaby는 "아이에게 최고의 시작점을 선물하자"는 매혹적인 명분을 내세웁니다. 하지만 지능과 예상 수명까지 숫자로적힌 성적표를 받아 든 부모에게, 자녀는 어느새 '더 나은 사양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할 결과물'로 보이게 되지는 않을까요. 게다가 그 숫자마저 과학이 아직 보증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무엇을 고르고 있는 걸까요.

이번에도 기술은 법보다, 그리고 사회적 합의보다 앞서 우리 곁에 와 있습니다. 이제 남은 건 이 기술을 어디까지 허용할지에 대한 우리의 합의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만약 가능하다면, 미래 자녀의 IQ와 키가 적힌 성적표를 미리 받아 보시겠습니까?

#기술과제도사이 #유전자검사 #배아선별 #생명윤리 #다유전자점수 #PickYourBa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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