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는 EU와 미국, 덴마크가 같은 딥페이크 문제를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다루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동아시아로 시선을 옮겨 중국과 한국을 살펴보고, 국가별 차이가 주는 시사점을 짚으며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 중국 — 플랫폼에 책임을 지우다
중국은 합성 미디어 문제를 본격적으로 마주하기에 앞서, 'AI가 만든 창작물을 누구의 것으로 볼 것인가'를 논의한 바 있습니다. 최근 AI 생성 콘텐츠(AIGC) 관련 판례[1]에서 중국 법원은, AI를 도구로 삼아 인간이 창작적 선택을 했다면 AI 생성물도 저작권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AI 생성물을 보호 대상에서 통째로 배제하는 대신, 인간의 기여를 기준으로 사건들을 개별적으로 판단하겠다는 접근입니다. 저자나 출처가 불분명한 상황에서도 창작성을 가려보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1] 리(李) v. 리우(劉) — 베이징 인터넷법원 (2023)京0491民初11279号, 2023. 11. 27.
원고가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으로 생성해 SNS에 올린 이미지를 피고가 무단 사용한 사건. 법원은 원고가 지시어의 선택·배열, 매개변수 설정, 이미지 선별 등에 지적 노력을 들여 심미적 선택과 개성적 판단을 구현했고, 본질적으로 사람이 도구를 사용해 창작한 것이므로 해당 이미지를 독창적 미술저작물로 인정하고 침해를 인정했다(배상 500위안).
AI 생성물의 저작물성을 인정한 중국 최초의 의미 있는 민사판결로 평가된다. 다만 이는 일반론이 아닌 사건별 판단으로, 같은 중국 내에서도 미드저니로 만든 디자인의 저작물성을 부정한 하급심 사례가 있다.
한편, 딥페이크 자체와 관련해서 중국은 플랫폼 책임을 전면에 세웁니다. 생성형 AI 서비스 제공자에게 침해 책임을 물은 광저우 인터넷법원의 '울트라맨'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2].
[2] '울트라맨' 사건 — 광저우 인터넷법원 (2024)粤0192民初113号, 2024. 2. 8. 선고
울트라맨 시리즈의 중국 내 독점 라이선스를 가진 원고가, 텍스트를 이미지로 만들어 주는 생성형 AI 서비스 제공자를 상대로 제기한 사건. 법원은 해당 서비스에서 생성된 이미지가 울트라맨과 실질적으로 유사해 복제권·각색권을 침해했고, 서비스 제공자가 신고 메커니즘 마련과 AI 생성 표시 등 합리적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손해배상(1만 위안)을 명했다. 생성형 AI 서비스 제공자에게 저작권 침해 책임을 인정한 첫 사례로 주목받았다.
🇰🇷 한국 — 처벌과 표시 의무로 맞서다
서구의 세 나라가 주로 새로운 '권리'를 만들고 그 권리와 표현의 자유 사이에 선을 그으려 했다면, 한국은 또다른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권리의 배분이 아니라 피해자 보호와 처벌에서 가장 먼저 논의가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시는 선거입니다. 2023년 말 신설된 공직선거법 제82조의8은, 선거일 90일 전부터 선거일까지 누구든 AI 기술 등으로 만든 '실제와 구분하기 어려운 가상의 음향·이미지·영상'을 선거운동을 위해 제작·편집·유포·상영·게시하는 것을 전면 금지합니다. 90일 이전에는 'AI로 제작했다'는 표시를 달면 쓸 수 있지만, 90일부터는 표시 여부와 무관하게 일체 막힙니다. 한 번 퍼진 허위정보의 피해를 회복하는 데 최소 석 달이 걸린다는 판단에서 90일이라는 기준이 나왔습니다. 2026년 6·3 지방선거가 이 조항의 사실상 첫 시험대였습니다.
딥페이크 성적 허위영상물을 처벌하는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는 'n번방 사건'을 계기로 2020년에 신설됐고, 2024년 10월 큰 폭으로 강화됐습니다. 제작·유포의 형량이 7년 이하 징역으로 올랐고, 영리 목적에는 3년 이상의 하한이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이전에는 '반포할 목적'이 있어야 제작을 처벌할 수 있었지만 그 요건이 삭제됐고, 그런 영상물을 단순히 소지·구입·저장하거나 시청하기만 해도 3년 이하 징역으로 처벌하는 조항이 새로 들어갔습니다. 이러한 강화의 배경에는 피해가 단기간에 폭증했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규제의 신설은 명확한 문제의식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신속하고 강력하지만, 그 규제가 다루는 특정한 영역에 대해서만 작동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빈틈을 메우려는 시도가, 특정 범죄나 영역에 묶이지 않는 더 보편적인 제도, AI 기본법입니다. 2026년 1월 시행된이 법에서는 생성형 AI의 결과물에 'AI가 만들었다'는 표시를 의무화했습니다. 개별 영역을 하나씩 좇는 대신, 생성물 전반에 '이것은 합성됐다'는 표시를 강제하여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접근입니다. 다만 이 표시 의무가 과연 '무엇이 진짜인가'를 판별해줄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를 두고는 따로 짚을 이야기가 많은데, 그 이야기는 추후 작성할 AI 기본법에 관한 글에서 이어가겠습니다.
🧭 마무리
EU는 가진 규제를 다시 해석하는 길을, 미국은 새로운 재산권을 창설하는 길을, 덴마크는 저작권을 확장하는 길을, 중국은 플랫폼에 책임을 지우는 길을, 한국은 형사처벌과 표시로 맞서는 길을 택했습니다. [다섯 케이스가 하나로 수렴한다는 내용]
다만 각 제도 중 어떤 것도 기술을 앞서가지 못합니다. 미국의 노조 협약도, 덴마크의 새 권리도, 한국의 형법 개정도, 모두 피해가 먼저 터진 뒤에야 뒤따라 나왔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제도가 앞서는 세상은 대체로 그 반대의 경우보다 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제도와 규칙은 언제나 기술보다 늦는다면 진짜 물음은 '언제 어떻게 완벽한 규제를 완성하느냐'가 아니라, '그 시차 동안 어떻게 교통정리를 할 것인가'일지도 모릅니다. 다섯 나라가 저마다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했지만 비슷한 방향으로 모여드는 것은, 각기 알맞은 결론을 찾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시차를 견디게 해줄 '임시 발판'을 더듬어나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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