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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WEEN TECH & RULES

디지털 페르소나 권리 - 사람으로 자산을 설계하다

디지털 페르소나 권리 - 사람으로 자산을 설계하다

지난 글에서 '규칙은 늘 기술보다 한 발 늦는다'고 마무리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차를 가만히 기다리지 않는 이들이 있죠. 규칙이 채 만들어지기 전에 한 발 앞서 그 공백을 사업 영역으로 선점하는 쪽입니다.

지드래곤이 합류한 스타트업 갤럭시코퍼레이션(Galaxy Corporation)이 그렇습니다. 2019년 자본금 100만 원으로 출발한 이 회사는 2025년 말 기업가치 1조 원의 유니콘에 올랐고, 지난해 매출 약 2989억 원 가운데 지드래곤의 비중이 75~80%에 이릅니다. 단일 아티스트에 기댄 회사처럼 보이지만, 정작 이들이 그리는 그림은 '사람을 어떻게 디지털 자산으로 바꿀 것인가'입니다. 이 회사는 다가올 규제의 대상이 될까요, 아니면 그 규제의 기준을 먼저 제시하는 선도 사례가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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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이 아니라 '존재'를 설계하다

전통적으로 연예인은 특정 공연이나 음반, 영상 같은 개별 저작물에 종속된 존재였습니다. 인물의 가치가 작품을 통해서만 실현됐다는 뜻입니다.

갤럭시코퍼레이션의 설계는 다릅니다. 연예인을 단발성 출연자나 개별 콘텐츠 IP가 아니라, 활동 데이터와 음성·외형 기록, 퍼포먼스 스타일을 종합해 확장 가능한 하나의 '디지털 존재'로 설계합니다.

2025년 12월 스타트업 행사 '컴업(COMEUP) 2025'에서 이 회사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등장시켜 지드래곤의 신곡 'POWER' 안무를 시연했고, 카이스트와 손잡고 '세계 최초 로봇 아이돌'을 정식 데뷔시키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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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 춤추는 휴머노이드에 환호…코엑스 달군 'AI 쇼' | 서울경제

사람 아티스트가 공연하는 한편, 가상 아이돌이 무대에 서고(예를 들어,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 더 나아가 AI와 결합한 로봇 아이돌까지. 최용호 대표가 그린 그림은 리얼·버추얼·로봇 아이돌이 공존하는 세계인 것입니다.

같은 발상은 신인을 뽑는 방식까지 바꿨습니다. LA와 오사카를 거쳐 서울에서 연 '2025 글로벌 버추얼 아티스트 오디션'에서는, 지원자가 실제 얼굴 대신 가상 아바타로 무대에 서고 외모나 성별이 아니라 음악적 역량과 '디지털 퍼스널리티'만으로 심사받습니다. 1000여 명 가운데 80명이 본선에 올랐고, 선발된 이는 자신만의 AI 디지털 아이덴티티(즉, 아바타)로 재탄생합니다. 데뷔하는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디지털 인격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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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결의 또다른 예시로, 2026년 6월 파리의 한 기술 전시에서는 이 회사의 휴머노이드가 고(故) 앙드레김의 디자인을 AI로 학습해 만든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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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갤럭시 코퍼레이션의 핵심 자산은 더 이상 저작물이 아닙니다. 목소리, 얼굴, 말투, 움직임 등, 한 사람의 정체성을 이루는 요소들 그 자체입니다. 즉, 저작권이 '작품'을 보호하는 권리라면, 알고리즘 공간에 재현된 사람 그 자체에 관한 권리를 논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다루려 할때 '디지털 페르소나 권리'라는 개념이 사용됩니다.




⚖️ 디지털 페르소나 권리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그 '디지털 페르소나 권리'란 정확히 무엇일까요. 먼저 짚어둘 것은, 이것이 아직 어느 나라 법전에도 이러한 명칭으로 적혀 있지는 않은 '떠오르는 개념'이라는 점입니다. 디지털 페르소나 권리의 핵심은 보호의 객체가 '작품'이 아니라 '사람의 정체성과 진위' 그 자체라는 데 있습니다. 누군가의 목소리와 얼굴, 말투가 알고리즘 공간에서 재현될 때, 그 재현을 본인이 통제할 수 있게 하자는 것입니다.

디지털 페르소나 권리는 다음 세 개의 축으로 설명됩니다.

  1. 생성 - 나의 디지털 재현물을 만들지 말지 결정할 권리
  2. 인증 - 어떤 재현물이 공식적으로 허가된 '진짜'인지 인증할 권리
  3. 복원 - 왜곡되거나 도용된 재현물을 되돌리고 거둬들일 권리

디지털 페르소나 권리는 종종 기존의 퍼블리시티권과 비교됩니다. 퍼블리시티권은 성명·초상 등 자신을 식별할 수 있는 모든 요소에 대해 상업적으로 이용할 권리가 본인에게 있음을 증명하는 권리입니다. 퍼블리시티권이 인격표지의 '영리적 이용'을 다루는 재산권 중심 개념이라면, 디지털 페르소나 권리는 거기에 학습 데이터와 알고리즘 프로파일, 가상 분신까지 끌어안는 한 단계 넓은 틀을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 한국의 현행법 - 퍼블리시티권을 넘어서

디지털 페르소나 권리와 관련해서 한국의 현행법은 어디까지 와 있을까요. 우선, 퍼블리시티권에 관하여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먼저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2020년 대법원이 BTS 화보집의 무단 제작을 부정경쟁행위로 인정한 것(대법원 2020. 3. 26.자 2019마6525 결정)을 계기로, 2021년 부정경쟁방지법이 개정되면서 '국내에 널리 인식되고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타인의 성명·초상·음성·서명 등 식별 표지'를 무단으로 상업적 이용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이 신설됐습니다[1]. 한국에서 퍼블리시티권의 첫 명문 근거입니다.

[1]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타목 — 2021. 12. 7. 개정, 2022년 시행. '국내에 널리 인식되고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타인의 성명·초상·음성·서명 등 그 타인을 식별할 수 있는 표지'를 무단으로 상업적 이용하는 행위를 부정경쟁행위로 규정. 금지청구·손해배상·시정권고 등 민사·행정 구제가 가능하나 형사처벌 규정은 없음.        

그러나 이 조항이 지키는 것은 어디까지나 '유명인'에 대한 '식별 표지의 무단 사용'이라는 행위입니다. 유명인이 아닌 일반인에겐 어떤 보호를 할 수 있는지, 권리 자체를 양도할 수 있는지, 보호 기간은 얼마인지, 사망한 사람의 권리는 누구에게 가는지까지 포함하지는 않죠. 나아가, 학습 데이터나 알고리즘 프로파일, 가상의 아바타는 어떻게 다룰지 등, 대 AI시대에 다루어져야 할 핵심 논의는 모두 피해갑니다. 그래서 퍼블리시티권을 넘어서 '디지털 페르소나 권리'라는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이를 위한 노력은 현재 진행 중입니다. 법무부는 2022년 말부터 '인격표지영리권'을 민법에 신설하는 개정안을 추진해 왔습니다[2]. 이 권리는 유명인뿐 아니라 모든 개인에게 인정되고, 양도는 불가하되 이용 허락은 가능하며, 무엇보다 당사자가 사망한 뒤에도 상속되어 사후 30년간 존속합니다. 다만 이 개정안은 국회기 만료로 폐기되고 재발의 하지 않고 있습니다.

[2] 인격표지영리권 신설 민법 개정안 — 법무부가 2022. 12. 26. 입법예고. 유명 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개인에게 '성명·초상·음성 그 밖의 인격표지를 영리적으로 이용할 권리'를 인정하고, 양도는 불가하되 이용허락(및 신념에 반하는 중대한 사유 시 철회)을 허용하며, 사망 시 상속되어 사후 30년간 존속하도록 했다. 2025년에도 유사 취지의 의원 발의가 있었으나, 본 글 작성 시점까지 국회를 통과하지는 않았다.        




🧭 마무리

지난 글에서 '규칙은 늘 기술보다 늦다'는 점에 방점을 찍었지만, 이번 글은 규칙이 비어 있는 그 시차를 한 기업이 어떻게 메우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알아보았습니다. 법이 선을 그어주기를 기다리는 대신 시장이 먼저 발을 내딛는 것, 어쩌면 이것이 '합법적 딥페이크'가 어떤 모습일 수 있는지를 미리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변리사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 퍼블리시티권이 한 쪽 분량의 주변적 논점에 불과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생성형 AI와 함께, 이제는 다루지 않을 수 없는 중심 이슈가 되어버렸습니다. 갤럭시 코퍼레이션의 활동이 시장의 관행으로 굳어질지, 아니면 법이 또다른 답을 들고 올지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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