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편에서는 AI와 뇌과학을 잇는 논문 이야기를 했습니다. 뇌과학 이야기를 해 보았으니, 이번에는 해당 분야의 특허 동향을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ACS Medicinal Chemistry Letters가 지난해 12월에 낸 사설 「Patent Highlights at the Frontier of Neuroscience: From Molecular Targets to Psychedelic Neurotherapeutics」는 이 저널이 그동안 다룬 40여 건의 신경과학 특허 하이라이트를 한데 묶어 흐름을 분석한 글입니다.
'특허로 보는 세계' 여섯 번째 주제는 뇌과학입니다. 이 사설의 주요 포인트를 세 가지 흐름으로 나누어 정리해 보았습니다.
🧱 첫 번째 흐름 - 혈액뇌장벽(BBB), 장애물에서 설계 조건으로
첫 번째는 혈액뇌장벽(Blood-Brain Barrier, BBB)입니다.
뇌는 우리 몸에서 가장 보호받는 기관입니다. 혈관과 뇌 사이에는 BBB라는 검문소가 있어, 혈액을 타고 온 분자 대부분을 차단합니다. 그래서 효과 있는 약을 만들어도 정작 뇌에 도달하지 못하는 일이 흔했고, 이는 신경치료제 개발에서 가장 큰 숙제였습니다.
기존에는 "효과가 있는 약물분자를 찾는 것"과 "약물분자를 어떻게 BBB를 통과시킬 것인가"가 개별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최근 접근방식이 바뀌었습니다. BBB를 "처음부터 설계에 반영해야 할 조건"으로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설 저자들은 이를 두고 "약동학적 한계를 분자적 기회로 전환했다(converting pharmacokinetic limitations into molecular opportunities)"고 표현합니다.
이 전환으로 인해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진단과 치료의 경계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BBB를 통과하는 분자를 "설계"할 수 있게 되자, 같은 원리로 "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분자(tracer)"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파킨슨병 환자의 뇌에 쌓이는 비정상 단백질(α-시누클레인)을 살아 있는 상태에서 추적하거나, 헌팅턴병 진행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러한 접근을 바탕으로 진단 기술이 앞다투어 개발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뇌세포 표면의 수용체를 관찰하던 영상 기술이, 이제는 세포 안쪽 신호 네트워크까지 들여다봅니다. 알츠하이머의 타우 단백질이나 신경염증의 분자 스위치 등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가시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설은 이제 신경과학 분야가 '메커니즘'에서 '시각화'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약효라는 결과를 사후에 확인하던 방식에서, 약물의 작용 과정 자체를 실시간으로 가시화하고 조정하는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한 분자가 동시에 진단 도구이자 치료제로 기능하는 것입니다. 이는 IP 측면에서도 흥미로운데, 이러한 분자에 관한 발명을 의약품 특허로 볼 것인지, 진단·영상 특허로 볼 것인지, 아니면 둘을 아우르는 새로운 범주로 인정할 것인지가 모호해질 수 있겠습니다.
🔁 두 번째 흐름 - AI가 약물 안으로 들어오다
두 번째는 AI 통합 신경치료제입니다.
사설은 "AI 주도 행동 약리학(AI-driven behavioral pharmacology)"이라는 말을 씁니다. 약물 설계(in silico), 생체 반응 관찰(in vivo), 정신 상태 조절(in mind)이 하나의 데이터 흐름으로 통합되는 새 패러다임을 지칭합니다. 이는 약리학과 정보과학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사설에 따르면 이 흐름은 크게 세 단계로 구성됩니다.
먼저 신경 활동을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뇌 모니터링 기기와 자극 인터페이스가 있습니다. 여기에 AI 기반 행동·약리 모델링이 더해져, 사이키델릭과 신경활성 약물 반응을 데이터로 분석해 용량과 효과를 자동 조절하는 폐쇄루프 구조가 형성됩니다. 환자가 약을 복용하는 시점에 시스템이 반응을 측정하고 다음 결정을 내리는 동적 치료 형태입니다. 마지막으로는 머신러닝 알고리즘이 신경 동역학과 직접 인터페이스하여 치료를 개인화하는 프레임워크입니다.
사설은 이 분야의 전체 흐름을 "화학, 계산, 인지가 융합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분자 정밀성과 시스템 지능과 환자 경험이 하나의 동적 피드백 시스템으로 통합된다는 것입니다.
AI가 도입된 이상, 의약품 특허법은 더 이상 약물만의 법이 아닐 것으로 전망됩니다. 치료제는 환자의 데이터를 입력받아 매 순간 다른 결정을 내리는 동적 시스템이 되고, 약물 분자는 그 시스템의 한 구성요소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분자 구조와 의학적 용도를 중심에 두던 청구항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물건 청구항, 방법 청구항, 시스템 청구항이 모두 필요하고, 각 청구항이 서로 다른 침해 양상을 다루게 됩니다.
🧬 세 번째 흐름 - 신경가소성, '뇌의 적응력'을 겨냥하다
세 번째는 사이키델릭(psychedelics)과 신경가소성입니다.
실로시빈이나 DMT 같은 고전적 환각 물질은 오랫동안 치료제보다 규제 대상에 가까웠습니다. 최근 특허는 이 분자들을 정밀하고 빠르게 듣는 치료제로 재설계합니다. 실로시빈 유사체를 환상통 치료에 쓰고, DMT에 베타차단제를 함께 투여해 심혈관 부작용을 줄이며, 환각 작용을 뺀 5-HT2A 작용제로 우울과 불안을 겨냥합니다. 주사제와 비강 분무 제형으로 항우울 효과가 빨리 나타나게 한 특허도 있습니다.
이 특허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들 약물이 특정 수용체가 아니라 신경가소성, 곧 뇌가 스스로 연결을 바꾸는 능력을 타겟팅한다는 것입니다. 사이키델릭은 뇌의 가소성을 한동안 열어 두는 약이고, 열린 동안 신경회로가 다시 짜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설은 신경가소성을 "약으로 다룰 수 있는 상태(druggable state)"라고 부릅니다). 즉, 사이키델릭은 "단순 약물이 아니라 적응형 회로 복구 플랫폼"인 셈입니다.
보통 약물 표적이라 하면 수용체나 효소 같은 단백질 하나를 표적으로 삼는데, 여기서는 뇌의 상태 자체가 표적입니다. 특정 증상을 억제하는 치료에서 뇌의 가소성 상태를 조절하는 치료로, 프레임이 바뀌는 것입니다.
🇰🇷 한국은 어떨까
그렇다면 약물과 소프트웨어가 한 몸이 된 치료제를, 제도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한국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디지털치료기기는 「디지털치료기기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에 따라 약이 아니라 독립형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로 심사됩니다. 약물과 소프트웨어를 각각 다른 카테고리로 보는 것입니다. 2023년 2월, 식약처는 에임메드의 불면증 인지치료 소프트웨어 '솜즈(Somzz)'를 국내 1호 디지털치료기기로 허가했습니다.
2025년 1월 시행된 디지털의료제품법은 한 걸음 더 나갔습니다. 이 법은 디지털의료제품을 디지털의료기기, 디지털융합의약품, 디지털의료·건강지원기기의 셋으로 나누는데, 그중 '디지털융합의약품'은 의약품과 디지털의료기기가 조합된 것을 말합니다(제2조 제3호).
제2조 제3호: "디지털융합의약품"이란 약사법 제2조제4호에 따른 의약품(첨단바이오의약품 포함)과 디지털의료기기 또는 디지털의료·건강지원기기가 조합된 의약품을 말한다. 다만, 주된 기능이 디지털의료기기에 해당하는 경우는 제외한다.
다만 결합체 전체를 새 범주로 둔 것은 아닙니다. 조문 그대로 디지털융합의약품은 어디까지나 '의약품'으로 분류되어 이 법에 없는 사항은 약사법을 따르되(제5조), 소프트웨어가 주된 기능이면 반대로 디지털의료기기 쪽으로 넘어가는 방식입니다.
반면 특허 쪽에는 아직 이런 범주조차 없습니다. 화합물은 물질 특허로, 기기는 장치 특허로, 알고리즘은 방법 특허로 각각 청구하고, 셋을 아우르려면 시스템 청구항을 따로 둬야 하죠.
여기에 한국만의 사정이 하나 더 있습니다. 사람을 치료하는 방법은 산업상 이용할 수 없는 발명으로 보아 특허를 주지 않기 때문에, "뇌 반응을 측정해 다음 용량을 정한다"는 폐쇄루프의 핵심 단계를 포함시켜 치료 방법으로는 청구하기는 어렵습니다. 투여 용법·용량을 의약 용도의 한 요소로 보는 길이 열려 있기는 하지만, 이는 보통 미리 정해 둔 용량을 전제한 것이지 환자마다 매 순간 달라지는 용량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 마무리
사설은 신경과학 특허의 진화를 하나의 궤적으로 정리합니다. 신경염증 제어, 신경퇴행성 질환 표적, 분자 영상, 사이키델릭 재공학, AI 통합에 이르기까지 모두 "효소 단위 조절 → 수용체 복원", 더 큰 범위에서는 "분자 단독 → 통합 시스템"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설은 이 새로운 영역에 "수렴 신경치료학(Convergent Neurotherapeutics)"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이 흐름 속에서도 의약화학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설은 의약화학을 "structural backbone"이라 부르며, 화학적 정밀성이 토대로 남고 그 위에 AI 분석이 결합해 "적응형 치료제"로 진화한다고 봅니다. 앞으로는 의약화학을 기초로 하여 다른 분야와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치료제가 메인스트림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IP 관점에서는 청구항의 변화가 두드러질 것으로 보입니다. 분자 하나의 구조와 용도를 청구하던 것에서, 분자와 알고리즘과 기기와 환자 데이터가 결합된 시스템 전체를 청구하는 방향으로 이동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약물 제조사, 기기 제조사, 알고리즘 개발자가 각기 다른 청구항을 침해할 수 있으므로, 보호 범위와 침해 판단의 기준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가 향후 신경치료제 산업의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특허로 보는 세계' 시리즈는 앞으로도 비정기적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기술과제도사이 #특허로보는세계 #뇌과학 #신경치료제 #디지털치료기기 #특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