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장의사라는 직업이 있습니다.
이들은 의뢰인이 지우고 싶은 글과 사진과 영상을 요청하면, 이를 인터넷에서 찾아내 삭제하고, 안 되면 검색에서라도 안 보이게 만드는 일을 합니다. 요청은 딥페이크 합성물부터 감추고 싶은 과거까지 다양합니다. 값은 게시물 한 건에 5만 원 정도에서 시작하지만, 쉽게 지워지지 않는 사이트가 늘면서 요즘은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합니다.
지우는 일이 직업이 될 만큼, 우리는 인터넷이 '영구 박제의 공간'이라고 믿어 왔습니다.
그런데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가 2024년 5월에 낸 보고서 「When Online Content Disappears」는 인터넷의 의외의 측면을 짚어냈습니다. 2013년에 존재하던 웹페이지의 38%가 10년 뒤에는 열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돈을 내고 사람을 사서 지우는데 다른 쪽에서는 열 개 중 네 개가 손도 대지 않았는데 사라진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 '잊혀질 권리'의 탄생
스페인 변호사 마리오 코스테하 곤살레스는 1998년 사회보장 채무로 집이 압류되어 경매에 넘어갔고, 일간지 라 방과르디아가 그 공고를 실었습니다.
코스테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빚을 갚았지만, 10년이 넘도록 자기 이름을 구글에 치면 그 공고가 맨 위에 떴습니다. 이에 그는 2010년 스페인 개인정보보호청(AEPD)에 신문사와 구글을 상대로 진정을 냈습니다. 개인정보보호청은 신문 공고는 법에 따라 실린 것이라며 그대로 두었지만, 구글에는 그 링크를 검색 결과에서 지우라고 결정했죠.
구글이 이에 불복해 소송을 내자, 스페인 법원은 이 문제가 EU 법 해석에 달려 있다고 보고 유럽사법재판소에 판단을 구했습니다. 2014년 5월 13일, 유럽사법재판소는 검색엔진도 이런 검색 결과를 지울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고, 이 판결로 '잊혀질 권리'라는 말이 세상에 퍼졌습니다[1].
[1] Google Spain SL, Google Inc. v. AEPD, Mario Costeja González — 유럽사법재판소(CJEU) 대재판부, 2014년 5월 13일 선고, 사건번호 C-131/12.
법원은 검색엔진 운영자를 개인정보 처리의 관리자로 보아, 원 기사가 적법하게 남아 있더라도 "부적절하거나 더 이상 관련 없거나 과도한" 검색 결과의 삭제를 요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2018년 시행된 EU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 제17조는 이를 '삭제권(잊혀질 권리)'으로 법문화했다.
한국 역시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2016년 6월 방송통신위원회는 언론이 '한국판 잊혀질 권리'라 부른 '인터넷 자기게시물 접근배제 요청권 가이드라인'을 시행했습니다. 내가 올린 글을 직접 지울 수 없게 되었을 때, 포털 등 사업자에게 타인이 보지 못하도록 가려 달라고 요청할 수 있게 하는 자율 규범입니다.
2023년 4월부터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일명 '지우개 서비스'(미성년 시절 올린 자기 게시물의 삭제를 대신 요청해 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지난 10년 우리는 '지워지지 않으면 어쩌나'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남지 않으면 어쩌나'를 걱정한 사람은 거의 없었죠.
📉 10년이면 38%가 사라진다
퓨리서치센터는 비영리 웹 저장소 커먼크롤(Common Crawl)에서 2013년부터 2023년까지 해마다 약 9만 개씩, 모두 100만 개 가까운 웹페이지를 무작위로 뽑았습니다. 그리고 2023년 10월에 그 주소를 하나씩 다시 접속해보았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전체의 25%가 열리지 않았습니다. 오래된 페이지일수록 많이 사라졌는데, 2013년에 존재하던 페이지는 38%, 2021년 페이지는 2년 만에 약 20%, 2023년 페이지는 8%가 접근 불가였습니다.
이 수치는 보수적으로 잡은 것입니다. 퓨리서치센터는 서버나 페이지가 없다는 것이 분명한 오류만 '접근 불가'로 셌고, 주소는 살아 있는데 내용이 바뀐 경우나 봇 차단으로 열리지 않은 경우는 모두 '접근 가능'으로 쳤습니다. 그러니 원래 주소에서 제대로 열리지 않는 페이지는 이보다 많을 것입니다.
🔨 페이지는 어떻게 죽는가
페이지들이 사라지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때로는 도메인째 사라지기도 하죠. 대개 회사가 문을 닫거나, 해마다 내야 하는 도메인 갱신비와 서버 비용을 아무도 내지 않을 때입니다.
그런데 앞의 25% 가운데에는 이러한 이유로 사라진 페이지(9%)보다, 주인이 멀쩡히 있는 사이트에서 페이지만 사라지는 경우(16%)가 더 많습니다. 이것은 대개 주인이 사이트를 손볼 때 발생합니다.
홈페이지를 개편하거나 게시판 프로그램을 바꾸면 글은 그대로 옮겨 가도 주소 체계가 달라지는데, 이때 옛 주소를 새 주소로 넘겨 주는 설정(리디렉트)을 빠뜨리면 바깥에 걸려 있던 링크가 모두 끊깁니다. 그리고 개편을 맡은 쪽에게 이 설정은 새 사이트를 여는 일보다 한참 뒷순위인 경우가 많습니다.
개편이 아니라 정리로 사라지기도 합니다. 구글은 2009년부터 단축 주소 서비스 goo.gl(긴 웹 주소를 goo.gl/ABC12x처럼 짧게 바꿔 주는 서비스)을 운영했습니다. 그러다 2024년 7월, 이듬해 8월 25일부터 모든 링크를 끊겠다고 발표했죠. 2024년 6월 한 달 동안 링크의 99%가 아무 활동이 없었다는 이유였습니다.
문서와 영상, 게시글 곳곳에 박힌 링크는 어떻게 하느냐는 반발이 나오자, 구글은 종료를 3주 남짓 앞두고 '일부 링크는 살리기로' 방침을 바꿨습니다. 2024년 말에 아무도 누르지 않은 링크만 끊기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goo.gl 도메인은 지금도 작동하고 살아남은 링크는 원래 페이지로 연결되지만, 나머지는 끊겨서 오류 화면만 보여 줍니다.
정리하면, 많은 경우 웹페이지는 누군가 지우려고 해서가 아니라 사이트를 개편하고 비용을 줄이는 과정에서 사라집니다.
🏚️ 주소만 남은 도서관
하버드 로스쿨의 조너선 지트레인은 2021년 애틀랜틱에 쓴 글 「The Internet Is Rotting」에서, 웹을 '도서관 없이 책을 각자 집에 두고 주소만 공유하는 체계'라고 비유했습니다. 2015년에 등록된 주소를 2021년에 찾아가면 책이 없어도 이상할 게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인터넷이 만들어진 방식에 있습니다. 인터넷을 설계한 학자들은 전화망이나 배송망처럼 하나의 거대한 망을 직접 깔 돈도 없었고, 이걸로 돈을 벌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미 있는 네트워크들을 서로 잇는 규칙만 정했고, 인터넷에는 운영 회사도 관리 조직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 위에 웹을 만든 팀 버너스리도 규약을 무료로 내놓았습니다.
요금을 받지 않으니 누가 무엇을 쓰는지 기록할 회사도, 웹 전체를 내려다볼 중앙도 필요 없었죠. 링크는 상대 페이지의 주소를 적어 두는 것일 뿐이어서, 세계 어디의 서버든 가리킬 수 있었지만 그 서버의 주인은 누가 자기 페이지에 링크를 걸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버너스리는 이러한 점을 알고는 있어서, 1998년 「좋은 주소는 바뀌지 않는다(Cool URIs don’t change)」라는 글에서 주소를 바꾸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주소를 바꾸지 못하게 막는 장치는 넣지 않았죠.
다른 설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웹보다 수십 년 앞서 테드 넬슨이 구상한 제너두(Xanadu)는, 링크가 걸리면 링크된 쪽에도 그 사실을 알려 주는 '양방향 링크'까지 계획했습니다. 처음부터 끊어지지 않는 링크를 만들려 한 것이죠.
하지만 제너두는 버전 관리와 저작권료 정산까지 처음부터 모두 챙기려다, 수십 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넬슨은 훗날 웹이 "단방향의, 늘 끊어지는 링크"로 하이퍼텍스트를 하찮게 만들었다고 비판했지만, 살아남은 쪽은 불완전해도 일단 작동하는 웹이었습니다.
지트레인은 인터넷과 웹의 이런 설계 태도를 '미루기 원칙(Procrastination Principle)'이라고 부릅니다. 앞으로 생길지 모를 문제를 미리 다 풀려고 설계를 무겁게 만들지 않고, 문제가 생기면 그때 가서 해결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사이트가 생겼다 사라지고 페이지가 자리를 옮기는 것도 결함이 아니라 의도된 특징이었습니다.
🫥 책임의 공백
미루기 원칙은 성공했고, 허락도 관리자도 필요 없는 웹은 그 어떤 네트워크보다 빠르게 자랐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남들이 의존하는 콘텐츠를 유지할 책임의 공백"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집주인은 자기 책만 챙기면 그만이고, 남의 집 책이 사라지는 것을 막을 의무는 누구에게도 없으니까요.
이 공백은 평소엔 눈에 띄지 않지만, 운영자가 손을 놓는 순간 드러납니다. 파라마운트는 2023년 5월 MTV News 부서를 없앴고, 1년 남짓 뒤인 2024년 6월에는 사이트까지 내렸습니다. 1996년부터 쌓인 기사 주소는 하룻밤 사이에 모두 MTV 첫 화면으로 넘어가 버렸죠. 파라마운트는 기사를 내부에 보관하고 있다고 했지만, 바깥에서는 열어 볼 수 없었습니다.
같은 해 1월에는 창간 8개월 만에 문을 닫은 뉴스 스타트업 더 메신저(The Messenger)가, 폐간 발표 몇 시간 만에 사이트를 비웠습니다. 남은 것은 이름과 이메일 주소뿐이었습니다.
의외로 언론사들은 기사를 잘 지키는 데에 그리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컬럼비아대 토우 센터(Tow Center)가 2019년 언론사 21곳을 조사했더니, 19곳은 자기 웹 기사를 보존하는 조치를 전혀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문서로 된 보존 정책은커녕 비공식적인 관행조차 없었죠. 사실상 그 일을 인터넷 아카이브나 구글 같은 바깥 기관에 맡겨 둔 셈이었습니다. 늘 '지금 새로 일어나는 일'을 좇는 언론에게, 이미 내보낸 기사를 남기는 일은 뒷전이었던 것입니다.
예전 같으면 도서관이 이 빈자리를 메웠겠지만, 출판이 디지털로 옮겨 가면서 도서관도 학술지와 전자책을 소장하는 대신 일정 기간 볼 수 있는 권리를 사게 되었습니다. 구독이 끊기면 그동안 받아 본 것까지 열리지 않습니다. 도서관마저 책이 아니라 집 주소만 갖게 된 셈입니다.
🧾 남기는 데엔 돈이 든다
디지털 보존 연구자 데이비드 로젠탈은 1998년 스탠퍼드 도서관에서 LOCKSS라는 보존 프로그램을 시작해 2017년 은퇴할 때까지 이끌었습니다. LOCKSS는 ‘Lots Of Copies Keep Stuff Safe’, 사본이 많으면 안전하다는 뜻입니다. 여러 도서관이 전자저널의 사본을 직접 나눠 갖게 해서, 도서관이 다시 주소가 아니라 책을 갖도록 하려는 시도였죠.
퓨리서치센터의 보고서가 나오자 로젠탈은 몇 가지 비판을 하였는데, 그중 하나는 퓨리서치센터가 열리지 않는 페이지가 웹 아카이브에 사본으로 남아 있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열리지 않는 것과 사라진 것은 다르죠. 실제로 2026년 4월 인터넷 아카이브가 퓨리서치센터의 주소들을 자기들의 웨이백 머신(Wayback Machine)에 대조해 보니, 넷 중 하나꼴이던 '열리지 않는 페이지'가 웨이백 머신까지 뒤지자 열 중 하나꼴로 줄었습니다.
하지만 사본은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로젠탈이 20년 넘게 되풀이해 온 주장은, 디지털 보존의 가장 큰 위협이 기술이 아니라 돈이라는 것입니다. 파일이 손상되거나 낡는 것보다 보존할 돈이 없는 것이 훨씬 큰 위협이라는 말이죠. 2017년, 그는 전 세계가 웹을 아카이브하는 데 쓰는 돈이 한 해 3천만 달러에도 못 미친다고 추산했습니다. 그 콘텐츠를 만드는 데 들어간 돈은 수천억 달러인데도요. 이대로라면 미래의 독자가 볼 수 있어야 할 것의 절반 이상이 남지 못할 것이라는 게 그의 경고입니다.
로젠탈의 경험칙으로는 디지털 보존 비용의 절반이 처음 담는 단계에서 듭니다. 보관에 3분의 1, 열람 제공에 나머지 6분의 1이 들고요. 사라진 뒤에는 담을 수 없으니, 무엇이 남을지는 결국 페이지가 살아 있는 동안 누가 그 첫 비용을 대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웹에 있는 기록은 어떻게 관리되고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이 보존에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걸까요?
다음 편에서는 사라진 페이지가 지식에 어떤 구멍을 내는지, 그리고 소멸에 맞서 어떤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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